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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감옥에서의 유일한 자유, 커피

리디언스
202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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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자 ‘파시즘에 대항한 영혼의 승리자이며 위험한 지식인’이라고도 일컫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1891년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사고로 등이 굽는 장애를 얻었고 성년이 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병치레를 겪으며 결국 토리노 대학을 중퇴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사회주의 운동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며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했다. 1926년 1월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었지만 같은 해 11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경찰에 체포된 후 20년의 형을 받아 수감 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그람시에게 내려진 판결은 ‘20년 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 정도로 그람시는 당시의 무솔리니 정권에 부담이었던 위험(?)인물이다. 하지만 형기를 다 채우지도 못한 1937년 생애를 마치게 되지만 감옥에서 보낸 10년 동안 노트 30여 권에 이르는 많은 글을 남겼다. 그 중 <옥중 수고>와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그가 남긴 최고의 지적 결과물이다.


<옥중 수고>가 마르크스 사상의 계보를 잇는 그람시답게 ‘헤게모니’와 ‘진지전’과 같은 정치적 개념과 철학, 역사, 문화에 걸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과 감옥 내에서의 개인적인 고통, 가족들에 대한 염려와 불안 등이 주 내용이다. 그람시의 개인적 면모를 알 수 있는 저작이다. 더욱이 이탈리아 문학상까지 수상 할 정도로 아름답고 명료한 문체로도 유명하다.

1927년 2월 19일 그람시는 헌신적으로 자신의 옥바라지를 해주고 있던 처형 타니아에게 편지를 보낸다.

“편지지를 거의 다 써버렸지만 이곳에서의 내 생활을 상세히 기술하고자 합니다. 개략적으로 말해 줄게요. 나는 기상 경적이 울리기 30분 전인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뜨거운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내 감방과 변기를 청소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 민음사, 104p)

놀라운 건 90여 년 전 당시 이탈리아 감옥에서는 수감자 자신이 손수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니면 정치범이었던 그람시에게만 베풀었던 일종의 혜택이었을까? 일정 통 수 이상의 편지는 쓸 수 없었던 데다가 편지지조차 모자라 서둘러 마쳐야 하는 대목이 종종 등장할 정도로 열악한 감옥 생활이었다. 하지만 커피를 비교적 자유롭게 마실 수 있었다는 건 커피 마시는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상이었다는 반증이다. 더구나 어머니에게 보낸 2월 26일 자 편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식사는 하루 두 번 식당에서 먹습니다. 아침은 우유를 작은 팩으로 마십니다. 음식을 덥히거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작은 가열 기구를 사용하고 있답니다.”(108p)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우선 물 끓이는 기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물을 끓이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맛있는 커피가 있다 한들 무용지물이다. 어쨌든 그람시는 용케 물 끓이는 기구를 사용할 수 있었으니 커피는 비교적 자유롭게 마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편지에는 생전의 그람시가 아주 오래전부터 커피를 좋아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재미있는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 제가 치커리나 다른 찌꺼기를 넣지 않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고 꾀를 부리던 일을 기억하세요?” (107p)

여기에서 말하는 ‘치커리나 다른 찌꺼기를 섞은 커피’란 대개 빈곤층이 마시거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혹은 전쟁통과 같이 커피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커피 대용으로 마시던 저급 커피를 말한다. 당연히 순수한 커피보다 맛과 풍미가 현저히 떨어졌다. 그람시가 어렸을 적부터 커피의 맛을 알았다는 뜻이다.

동생 카를로에게 보낸 1927년 9월 12일 자 편지는 그람시의 가난했던 삶을 절절히 보여준다.

 “처음에 나는 아침에 조금씩 마시던 커피를 끊었고, 그 뒤에는 저녁식사를 건너뛸 수 있도록 점심시간을 뒤로 미루었지” (139p)

가난은 그람시 생애의 전부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가난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으며 부유한 생활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아침 대신으로 마셨던 커피마저 끊었다니 이처럼 비참한 궁핍이 또 있을까?

타니아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서는 행상인이 파는 중국 장신구를 이단시하여 유럽이 아시아화(化) 되고 있다는 어느 복음주의자의 우려를 조롱한다.

“나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더 이상 재즈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일을 그만둘 수 없으며 앞으로 그는 자신의 핏속에 있는 흑인의 색소를 잡아내기 위해 거울 안에 있는 자신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168p)

중국 장신구에 의한 아시아화를 걱정한다면서도 정작 본인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커피와 재즈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며 놀린 것이다. 커피의 전래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복음주의자들이 터부시하는 이슬람 지역에서 온 것이 아닌가.

평생 자본주의를 경계하여 그 반대편에 서 있었던 그람시에게도 재즈와 커피는 우려의 대상이 아닌 민중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가치였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커피는 그람시가 감옥에서 스러져가면서도 글을 쓰게 만들고 삶을 지탱하게 해주었던, 유일한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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