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의 연결고리를 풀어 탄생시킨 기상천외한 세상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 문학동네)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는 벨기에 출신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Bernard Quiriny)의 환상적, 철학적 단편 16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입니다. 그중 첫 번째 편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는 첫 문장을 쓰지 못해 결국 말줄임표만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소설가 피에르 굴드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라는 이 책 제목 앞에서 자기 자신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첫 문장을 쓰지 못하는 고통 때문에 들고 있던 펜을 던져버리거나 노트북을 덮어버리는 건 비단 한두 사람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인공 굴드는 아무 내용도 쓰지 못한 채 책을 완성하고 맙니다.
굴드는 짜증이 났다. 불안에 사로잡힌 그에게 훨씬 더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첫 문장을 괄호로 처리한다면 두번째 문장이 첫 문장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번째 문장 역시 괄호로 처리하는 거다. 그러면 세번째 문장이 첫번째 문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번째 문장 역시 괄호로 처리할 것이고, 네번째와 다섯번째 문장도 괄호로 처리하는 거다. 흥분의 절정에 다다른 굴드는 책의 첫 세 단락을 단숨에 써내려갔다.
˝(•••) (•••) (•••) (•••) (•••) (•••) (•••) (•••) (•••) (•••) (•••) (•••) (•••) (•••) (•••) (•••) (•••) (•••)˝
그는 단 하루 만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자랑스러움에 취해 그것을 두 번 되풀이해 읽고 나서 지쳐 쓰러졌다. 그렇게 해서 굴드는 한 권의 소설을 써낸 작가가 되었다.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어서 결국 아무 내용도 쓰지 못한 소설의 작가.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 문학동네 17p)
그의 작품들 곳곳에는 소설 속 인물이자 동시에 작가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피에르 굴드‘라는 인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단검에 찔린 유명인들에 관한 안내서>에서는 굴드가 단 한 권의 책만을 쓰려고 하는 작가로 나오며 <높은 곳>에서는 편집자로, <박물관에서> 편에서는 학예 연구원으로 나오는가 하면 <크누센주의, 그것은 사기 협잡>에서도 주요 핵심인물로 등장합니다. 마치 각 편들이 상호텍스트성으로 연결되어 굴드라는 인물이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의 또 다른 자아 즉 페르조나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작가 키리니는 그를 통해 현실에서는 결코 수용하기 어려운(어쩌면 수용하기 싫은)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세계의 욕망을 문학 바깥에서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읽어 내는 시간보다 읽고 난 후의 여운이 더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베르나르 키리니가 건설한 기이한 상상의 세계에 들어와 서성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철학적인 단편들이라고 해서 철학적 지식과 서사가 직접 나열되거나 진행된다는 건 아닙니다. 사유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독자들이 소설 속 환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결말에 이를 때 즈음에야 비로소 읽으면서 느꼈던 그간의 기분들이 곧 철학적 사유라는 걸 인식하게 될 뿐입니다.
조금 달리 생각해 보면 굴드의 세계가 환타지한 세상인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말로 거꾸로 기기묘묘한 세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온갖 부조리한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되는 지금을 사는 우리가 논리적인 사고의 범위에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런 작가들의 책은 전작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는 1978년생의 젊은 작가인데다가 그간 국내에 나온 그의 작품은 아직 네 권밖에 없습니다. 발간 되는대로 한 권씩 차례로 읽어나가면 기회는 충분합니다.
논리의 연결고리를 풀어 탄생시킨 기상천외한 세상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 문학동네)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는 벨기에 출신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Bernard Quiriny)의 환상적, 철학적 단편 16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입니다. 그중 첫 번째 편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는 첫 문장을 쓰지 못해 결국 말줄임표만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소설가 피에르 굴드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라는 이 책 제목 앞에서 자기 자신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첫 문장을 쓰지 못하는 고통 때문에 들고 있던 펜을 던져버리거나 노트북을 덮어버리는 건 비단 한두 사람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인공 굴드는 아무 내용도 쓰지 못한 채 책을 완성하고 맙니다.
굴드는 짜증이 났다. 불안에 사로잡힌 그에게 훨씬 더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첫 문장을 괄호로 처리한다면 두번째 문장이 첫 문장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번째 문장 역시 괄호로 처리하는 거다. 그러면 세번째 문장이 첫번째 문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번째 문장 역시 괄호로 처리할 것이고, 네번째와 다섯번째 문장도 괄호로 처리하는 거다. 흥분의 절정에 다다른 굴드는 책의 첫 세 단락을 단숨에 써내려갔다.
˝(•••) (•••) (•••) (•••) (•••) (•••) (•••) (•••) (•••) (•••) (•••) (•••) (•••) (•••) (•••) (•••) (•••) (•••)˝
그는 단 하루 만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자랑스러움에 취해 그것을 두 번 되풀이해 읽고 나서 지쳐 쓰러졌다. 그렇게 해서 굴드는 한 권의 소설을 써낸 작가가 되었다.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어서 결국 아무 내용도 쓰지 못한 소설의 작가.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 문학동네 17p)
그의 작품들 곳곳에는 소설 속 인물이자 동시에 작가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피에르 굴드‘라는 인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단검에 찔린 유명인들에 관한 안내서>에서는 굴드가 단 한 권의 책만을 쓰려고 하는 작가로 나오며 <높은 곳>에서는 편집자로, <박물관에서> 편에서는 학예 연구원으로 나오는가 하면 <크누센주의, 그것은 사기 협잡>에서도 주요 핵심인물로 등장합니다. 마치 각 편들이 상호텍스트성으로 연결되어 굴드라는 인물이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의 또 다른 자아 즉 페르조나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작가 키리니는 그를 통해 현실에서는 결코 수용하기 어려운(어쩌면 수용하기 싫은)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세계의 욕망을 문학 바깥에서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읽어 내는 시간보다 읽고 난 후의 여운이 더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베르나르 키리니가 건설한 기이한 상상의 세계에 들어와 서성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철학적인 단편들이라고 해서 철학적 지식과 서사가 직접 나열되거나 진행된다는 건 아닙니다. 사유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독자들이 소설 속 환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결말에 이를 때 즈음에야 비로소 읽으면서 느꼈던 그간의 기분들이 곧 철학적 사유라는 걸 인식하게 될 뿐입니다.
조금 달리 생각해 보면 굴드의 세계가 환타지한 세상인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말로 거꾸로 기기묘묘한 세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온갖 부조리한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되는 지금을 사는 우리가 논리적인 사고의 범위에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런 작가들의 책은 전작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는 1978년생의 젊은 작가인데다가 그간 국내에 나온 그의 작품은 아직 네 권밖에 없습니다. 발간 되는대로 한 권씩 차례로 읽어나가면 기회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