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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읽는 커피 - 우현 고유섭 (又玄 高裕燮)

리디언스
202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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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의 선구자

우현 고유섭 (又玄 高裕燮)



“자네, 집안에 먹을 것이 넉넉한가?” 


1927년 한 학생이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미술사를 연구하겠다고 하자 담임 교수가 던진 질문이다. 1927년이면 일제강점기가 농익기 시작한 시기다. 근대화란 명목의 건축물들이 우후죽순 신축되며 다수의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파괴되던 시기였다. 더욱이 한낱 식민지의 미술사라면 제대로 된 연구 체계가 있을리 만무했을테니 전공자의 미래가 보장될 턱이 없다. 교수의 조언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일화의 주인공이 바로 한국 미술사의 선구자라 일컫는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 선생이다.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 사진 : 프레시안




우현 고유섭은 1905년 인천 용궁에서 태어나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당시 부친의 외도로 모친과 헤어져 삼촌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또 어릴적부터 편도선염, 임파선종 등의 병치레가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족 성향이 강하여 3·1만세운동에 직접 그린 태극기를 들고 참여했다가 3일간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이 일은 후일 고유섭이 조선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1920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고유섭은 문예부에서 활동하며 세계문학에 관심을 갖는가 하면 동아일보에 시조를 발표하고 문학잡지 ‘문우’와 잡지 ‘조광’에 작품을 발표한다.

하지만 점차 미술로 관심을 돌리다 1927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해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다. 이즈음 동기생이었던 국어학자 이희승이 국어학자 미술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를 묻자  “우리의 미를 연구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민족 정신이 투철했던 고유섭 선생으로서 이보다 명쾌한 대답이 또 있을까 싶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서. 왼쪽 첫번째가 고유섭 (1941) 사진 : 경주신문




미학과 미술사에 입문한 고유섭은 서양미술사, 동양미술사, 중국미술사, 일본미술사 등의 미술사강의를 접하면서 특별히 조선미술사 연구에 뜻을 품기 시작했다. 1930년 졸업 후에는 경성제국대학 미학연구실의 조수로 근무하면서 한국의 불교 조각과 탑, 고구려 미술 등을 연구, 한국 미술만의 특징을 찾고자 했다. 

1930년경부터 규장각 장서 중 회화에 관한 문헌을 발췌하는 작업을 5∼6년간 진행하며 회화사 연구를 시작했고 이때 정리한 안견(安堅), 강희안(姜希顔), 정선(鄭敾), 김홍도(金弘道) 등 화가별 연구한 자료는 나중에 <조선회화집성>으로 출간되었다. 




고유섭 관장 재임 당시의 개성부립박물관 전경 (사진 : 매경 프리미엄 )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에 부임한 후에는 특히 고려청자와 불상을 연구하여 개성부립박물관장 재임 기간인 11년 동안 유물의 자료수집뿐 아니라 실제 답사를 통해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다. 이 때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사후에 발간된 것이 바로 <조선탑파(韓國塔婆)의 연구> (1948년)이다. 이 책은 탑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조각에 대한 최초의 논문으로 평가된다.




인천시립박물관장 재임 당시 이경성 선생 (사진 : 인천일보)




한편 한국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을 역임한 이경성은 와세다 대학 시절 무렵부터 당시 개성부립박물관장이었던 고유섭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교류하였다. 고적 답사를 통한 유물과 유적의 탐구로 우리 미술의 전통을 찾으려 했던 고유섭 선생과의 서신 교환은 이경성이 박물관과 미술관 업무에 종사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리 미술사 전반에 관한 글을 꾸준히 발표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944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작고했다. 태어나던 해 1905년은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이고 4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1944년은 해방되기 불과 한 해 전이다. 선생께서 생존했던 기간이 우리 민족의 가장 불행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대단히 희한한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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