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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문학 - 커피, 신이 내려준 음료 또는 악마의 음료

리디언스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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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신이 내려준 음료 또는 악마의 음료



이슬람 커피하우스를 묘사한 세밀화 (사진 : 월스트리트 저널)



커피를 둘러싼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인 에티오피아의 ‘칼디의 전설’과 예멘의 ‘오마르의 전설’에서 보듯이 커피의 기원은 거의 이슬람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이슬람 세계는 왜 하필 커피에 주목했을까?

커피는 처음에 음료로서의 역할보다는 카페인을 비롯한 약리 작용의 효과로 이슬람 사제들 간에 유통되어 음용되었다. 15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대부분의 가정과 공공장소에서 커피를 마시게 된다. 사제들만의 소위 높은 신앙심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으로서의 커피가 이젠 일반 대중들에게도 없어서는 안되는 일상적인 음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커피의 주요 성분은 말할 것도 없이 카페인이다. 이 카페인은 알다시피 여러 약리 작용이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각성작용이다. 쉽게 말하자면 뇌를 깨어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수면을 방해하는 셈인데, 이런 작용이야말로 밤새 기도하며 코란을 외우는 신앙심이 두터운 이슬람 사제와 교도들에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즉 ‘신이 내려준 음료’가 된 것이다.

게다가 특별한 부작용이 없거니와 술을 금지한 이슬람 교리에도 적극적으로 부합하는 최적의 음료였던 셈이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메카를 비롯, 카이로 콘스탄티노플 등지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전용 공간, 즉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탄생하게 된다. 한때 커피 음용 자체와 커피하우스에 대한 탄압이 있기도 했으나 커피는 이미 대중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음료로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된 것이다. 오히려 이슬람교의 전파에 따라 북아프리카와 인도 지역, 이슬람교가 들어간 유럽의 일부 지역인 스페인까지 흘러들어가게 된다.  





영국 런던의 초기 커피하우스 (사진 : 기업경제신문)



당시의 유럽 사회 분위기는 동방(이슬람 지역과 인도를 뜻한다)에 대한 신비감이 충만되어 있던 사회로서 후추를 중심으로 한 향신료의 광적인 동경으로 비추어 볼 때 초기의 커피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의 전파가 아닐까 생각한다.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의 수입과 수요량의 감소 시기는 커피의 유럽 전파 시기와 묘하게 겹쳐진다. 두 품목 모두가 기호품이라는 데에서 상호 보완적인 수요 공급이 이루어졌을 거라 추정할 수 있다. 커피가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17세기 유럽은 마치 술에 절어있다는 표현이 맞을만큼 다량의 술이 소비되던 사회였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성인이 하루에 마시는 맥주의 양이 3리터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즉 술을 대체시킬 수 있을만한 기호품으로서의 음료의 등장이 절실한 시기였던 셈이다. 

하지만 커피가 커피 수요가 증가하면 할수록 이에 대한 탄압 역시 비례했다. 자신들의 경제적 수입 감소를 우려한 맥주나 포도주 양조 업자나 음식점 주인 등에 의한 압박은 물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의사와 과학자들의 적대적인 견해가 있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18세기의 자연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과 의사인 사무엘 하네만(Samuel Hahnemann) 등이 제기한 커피의 각성 효과가 인위적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그런 것들이다. 검은 색의 이교도 지역에서 들어오는 커피는 종교적으로도 ‘이교도의 음료’ 혹은 ‘악마의 음료’로 불리며 배척당하기도 했다. 커피에 세례를 주고 자신 또한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는 클레멘스 8세에 얽힌 ‘커피 세례’이야기 역시 커피 비판론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커피 역사의 일부분일 뿐, 신의 음료냐 악마의 음료냐 라는 대립과 논란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커피는 이제 종교와 이념 민족과 국가 직업 성별 나이 같은 일반 개념 너머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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