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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펄 벅 (Pearl S. Buck)

리디언스
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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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라고 부른

 펄 벅 (Pearl S. Buck)


1962년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노벨상 수상작가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초청된 참석자 중에는 작가 펄 벅(Pearl S. Buck, 1892~1973)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펄 벅과 케네디가 나눈 유명한 대화가 전해진다.

그 자리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며 안부를 물었고 펄 벅은 “한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케네디는 “한국은 골치아픈 나라라서 비용이 많이 듭니다. 내 생각에는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키고 예전처럼 일본에게 통치하게 놔두는 편이 나을 듯 합니다”라고 했다.



케네디와 담소를 나누는 펄 벅 (1962) 사진 : 도서출판 길산




그 말을 듣고 화가 난 펄 벅은 곧바로 정색하며 “대통령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일본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건 마치 과거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그 때로 돌아가라는 소리와 같습니다.”라고 강하게 항의했고 머쓱해진 케네디가 곧바로 “농담이었습니다”라며 서둘러 대화를 마쳤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펄 벅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일화다.





펄 벅 (Pearl S. Buck, 1892~1973) 사진 : thefamouspeople.com




펄 벅은 1892년 6월 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힐스버러에서 태어났다. 생후 3개월 때 선교사였던 부모를 따라 온 가족이 중국으로 이주, 화북 지방과 난징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중국인 유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1911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버지니아에 있는 랜돌프 메이콘 여자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 1917년 농업기술박사이자 선교사였던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과 결혼하였다. 1920년에 지적 장애를 가진 첫째 딸을 출산한 펄 벅은 딸을 위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20년부터 난징대학의 교수로, 1924년에는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둘 째딸 제니스를 입양하여 1925년 중국으로 돌아왔다. 




대지 (The Good Earth, 1931) 사진 : antiquestradegazette.com




1930년 첫 작품인 <동풍, 서풍>(East Wind, West Wind)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듬해 1931년에는 중국 청나라 말기의 중화민국이 태동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대표작 <대지>(The Good Earth)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되었다. 1938년 마침내 미국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후로도 <애국자>(1939), <해일>(1948), <연인 서태후>(1956), <북경에서 온 편지>(1957), <북경의 세 딸>(1969), <만다라>(1970) 등 다수의 소설을 집필해 왔다. 

이렇듯 중국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냈고 다수의 작품들 또한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펄 벅의 삶 자체가 중국과 깊은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다.”라고 유서에 쓸 만큼 중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고 알려진다. 실제로 여덟 번이나 방한했고 1년가량 한국에 살기도 했다.

첫 한국 방문인 1960년 11월 경주를 여행하던 중 펄 벅은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자신의 지게에도 볏단을 지고 가는 농부를 보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펄 벅은 “왜 소달구지를 타지 않고 힘들게 짐까지 지고 가십니까?" 라고 물었고 농부는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 지고 가야지요“라고 대답했다. 당시 순작한 농부의 말에 감동 받은 펄 벅은 나중에 자신이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며 “서양의 농부였다면 누구나 당연하게 소달구지에 짐을 모두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하게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의 짐을 덜어 주려고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한 짐 지고 소와 함께 귀가하는 한국 농부의 모습을 보며 짜릿한 마음의 전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살아있는 갈대 (The Living Reed, 1963) 사진 : .oldbooks.co.kr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


이 농부에게 감동 받아 나중에 펄 벅이 자신의 작품 <살아 있는 갈대>의 첫머리에 적은 말이다. 또 늦가을 나무에 달려 있는 감이 새들을 위해 남겨 둔 ‘까치밥’이라는 설명에 매우 감동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가 본 어느 유적지나 왕릉보다 이 감동의 현장을 목격한 것 하나만으로 나는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고 자신한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한국 방문은 이때가 처음이지만 애초부터 펄 벅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중국 난징대 교수 시절 여운형, 엄항섭 등 한국 독립운동가의 자녀들을 가르쳤다고 알려졌고 중국 신문에 ‘한국인은 마땅히 자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설을 썼고 한국인이 연합국의 카이로선언을 믿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한국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또 ‘한국인의 밤’ 행사를 열어 손수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펄 벅과 유일한  (사진 : 매일경제)




부천 소사희망원 아이들과 함께 한 펄벅 (사진 : 국민일보)




한편 펄 벅은 1930년대부터 인종, 인권 문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했으며 1949년에는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어린이 입양기관인 '웰컴 하우스(Welcome House, Inc.)'를 창립했다. 또한 1964년에는 '펄 벅 재단(Pearl S. Buck International)'을 창설하고 1965년에는 한국에 한국지부를 설치한 뒤 유한양행의 창업주이자 독립운동가인 유일한(柳一韓, 1895∼1971) 박사와의 친분으로 1967년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소사희망원’을 건립, 다문화아동을 위한 복지 활동에 매진하였다.

펄 벅은 '한국에서 온 두 처녀'(1951), '살아있는 갈대'(1963), '새해'(1968)등 총 세 편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집필했다. 특히 나라를 위해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갈대'는 출판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는 등 '대지'와 함께 펄 벅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꼽힌다. 또한 자신의 이름인 펄(Pearl) 벅(Buck)에 착안하여 스스로 ‘박진주’라는 한국 이름을 짓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펄 벅은 평생에 걸쳐 작가로서의 삶 뿐 아니라 인종 차별과 인권 문제, 특히 아동 인권과 복지에 힘을 쏟았다. 말년을 모국 미국에서 지내다 1973년 3월 6일 지병으로 인한 투병을 끝으로 81세의 일기로 생을 마치고 생가가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그린힐스 농장(Green Hills Farm)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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