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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나다니엘 페퍼(Nathaniel Peffer)

리디언스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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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만세운동을 취재하고 알린 미국 기자 나다니엘 페퍼(Nathaniel Peffer)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서 윌슨 미국 대통령은 한 민족이 그들 국가의 독립 문제를 스스로 결정짓게 하자는 원칙 즉 ‘민족 자결주의(National Self-determination)를 제창한다. 이는 곧바로  일제로부터 독립을 열망하던 한국민에게도 영향을 주어 1919년 3월 1일 역사적인 3.1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한편 이보다 앞선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 한국유학생 400여 명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른바 2.8 독립선언이다. 그러니까 시기상으로는 2.8 독립선언이 3.1 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2.8 독립선언서 (사진 : 오마이뉴스)




춘원 이광수 (1892 ~ 1950) 사진 : 서울신문



2.8 독립선언서 서명인 중 한 명인 ‘춘원 이광수’는 이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번역한 후 상해로 갔다. 하지만 외국 언론을 이용한 보도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2.8 독립 선언 직후에 일어난 3·1운동은 외국 언론의 직접 취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당시 중국에서 ‘뉴욕 트리뷴’의 특파원과 ‘차이나 프레스’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나다니엘 페퍼(Nathaniel Peffer)’ 기자를 교섭한다. 




나다니엘 페퍼 (1890 ~1964)




이광수 등의 지원을 받은 나다니엘 페퍼는 곧바로 한국의 3·1 만세운동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들어왔다. 취재를 위해 1개월 간 머무는 사이 제암리 학살 사건을 해외에 최초로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로부터 각종 증언과 사진 자료를 제공 받아 이를 영문지 언론에 보도하였다. 

이때 수집하고 보도한 자료 등을 보완하여 1919년 상하이에서 펴 낸 것이 바로 <The Truth about Korea>라는 책이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이자 편집장이 된 이광수는 이 책의 번역을 후배 김여제(1896~1968)에게 부탁하여 <한국 독립운동의 진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된다.




김여제 (뒷줄 왼쪽에서 다선 번째) 사진 : mehansa.com 




<한국 독립운동의 진상>의 복간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원본을 1992년 12월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해외사료 수집반이 입수, 1994년에 이루어졌다. 원본은 국한문 혼용으로 2단 세로쓰기로 53쪽에 이르지만 복간본은 순한글 편집으로 89쪽에 이른다. 




The Truth about Korea 포판본(1919)  사진 : oldbookbank.com



나는 한국에 약 1개월간 머무는 동안 크고 작은 각 도회지와 각 면과 각 동리를 두루 둘러보아 여러 부류의 인물을 친히 대하여 보았다. 위로는 사이토(齊藤) 총독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여염의 촌백성에 이르기까지 나는 만나서 이야기하지 못해본 사람이 없다. 양반계급인 귀족도 보았고, 일개 평민도 보았다. 거상(巨商)과 부자도 보았고, 소상인과 빈민도 보았다. 목사도 보았고, 불교도도 보았고, 남녀학생도 보았다. 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도 보았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각 방면으로 진상을 관찰하려 하였다. 즉 한국에 간 목적은 순전히 공정한 관찰을 얻고자 함에 있었다. 나는 어떠한 편견을 품고 간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선입견을 갖고 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제 다만 내가 친히 목격하고 들으며 또 확신하는 바의 사실을 단지 사실대로 기록코자 한다. 이같이 나는 순전히 객관적 태도를 취하려 하나 그러나 동시에 또한 나 일개인의 감상도 없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왜냐하면 나는 친히 목도한 것이 있기 때문에 따라서 스스로 믿는 바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한다. 적어도 공정한 안목을 가진 이는 누구나 다 한국에 한 발자국만 들여놓는 날이면 한국인에게 동정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리라는 것을, 또한 누구나 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통치 방침이 불의하고 무도함을 깨닫지 못할 이가 없으리라는 것을, 일본이 장래에 어떠한 선정(善政)을 시행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과거의 실력을 미루어 보건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할 능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진상 p 11)


나다니엘 페퍼는 이 책 서두에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없이 실제로 접한 사실과 객관적  태도로 썼다면서 그 결과 일본의 한국 통치는 불의하며 어떠한 정책으로도 한국을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3월 1일이란 제목의 제6장에서는 독립운동의 실상을 매우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너무 맞아서 피부가 짓물러지기도 한다. 나머지 악형 방법은 너무 흉악하여 차마 기록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도 한두 번이 아니라 밤낮으로 또는 한 번에 몇 시간씩 계속된다. 그래서 허위든 사실이든 마침내 자백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그저 예 예 하는 자가 허다하다. 평양의 미국 선교사 마우리 씨의 사건도 이렇게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소위 증거라는 것도 이런 악형의 수단으로 위조해낸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의 진상 p 59)


7장, 8장에서는 3·1독립운동 이후 소위 ‘문화통치’를 시행하여 개선하겠다는 사이토 총독과의 면담 소감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아, 이러니까 한국인은 불만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자기들의 신성한 국토가 일본의 한 지방과 같이 간주되기를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총독의 설명을 듣건대 일본이 비록 사소한 점에서 동화를 부인한다 할지라도 역시 그 본뜻은 여전히 동화를 강요하려 함에 있다. 즉 일본은 장래에 더욱 무력을 사용하려 함이 분명하다. 이는 비단 나뿐 아니라 누구든지 예상한 바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죽어도 동화는 아니 된다 한다. 이것이 어려운 점이다. 아아, 이것이 어려운 점이다. (한국독립운동의 진상 p 76)


'한국은 중국의 거울’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는 한국의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학정과 압박으로 한국을 통치하려는 일본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법리(法理)상으로 한국독립의 가부라든지 혹은 정치적으로 한국인의 능력의 유무라든지 하는 것은 조금도 문제가 안 된다. 왜냐하면 한국인에게는 도덕상으로 독립할 만한 권리가 있다. 그들이 10년간의 고초와 고통 중에서 얻은 것은 이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독립은 당연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또한 일본으로 말하면 그들은 이미 한국의 종주권을 가질 권리가 없다. 저 같은 학정(虐政)과 압박으로는 도저히 다른 국민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인아, 아아! 한국인아, 용진하라! 끝까지 인내하라! (한국독립운동의 진상 p 89)


한편 3.1 만세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주역인 나다니엘 페퍼는 1890년 6월 30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1911년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트리뷴’의 중국 주재 기자로  25년을 상주한 아시아 전문가였다. 기자직을 그만 둔 후에는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의 정치학 강사로 시작, 1943년에 정교수가 되었다. 1946 ~ 1947년에는 중국의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1958년에 정년퇴임하여 1964년 4월 74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일제의 압박이 고조된 시기에 이와 같이 외국 언론인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취재한 내용이 책이 영문판과 국문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식민지 한국에서의 평화적인 시위가 단순히 우발적 혹은 국지적 사건이 아니었음을,  또 이를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진압한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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