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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윌리엄 리처드 칼스 (William Richard Carles)

리디언스
20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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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리처드 칼스 (William Richard Carles)

한국에서 자생하는 분꽃나무(Korean spice viburnum)의 학명은 비부르눔 카를레시[Viburnum carlesii]이다. 여기에서 카를레시 명칭의 작명자가 바로 윌리엄 리처드 칼스이다.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해 1884년 3월, 주한 영국 영사관의 영사로 윌리엄 리처드 칼스 (William Richard Carles)가 임명된다. 그는 이미 1883년에 한국에 입국한 상태였고 바로 그 해는 한국과 영국이 수호통상을 맺은 해이기도 하다. 서구와 맺은 조약으로는 한미수호통상조약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에 따라 베이찡 공사관에서 근무하여 비교적 한국과 주변 정세에 사정에 밝았던 칼스가 주한 영국영사관의 영사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칼스가 영사로 부임하기 전 애초의 방문 목적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의 자원 탐사가 목적이었다. 






한국에서의 체험은 1888년 <조선풍물지 Life in Korea>를 통해 세상밖에 알려진다. 하지만 <조선풍물지>는 한국에 대한 단순한 기행문 혹은 정치 회고록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자원 현황를 탐사하여 작성한 일종의 보고서라는 성격이 짙다. 따라서 칼스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영사라는 본연의 외교 업무보다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등 한반도 북부 지방의 지하 자원을 조사하는 일에 주로 매진했다.

당시 한국에는 일본이 곳체(Karl Gottsche)라는 독일의 자원 전문가를 고용하여 자원 침탈 목적의 사전 조사를 하고 있었고 이런 사실을 파악한 미국 또한 자원 탐사 전문가인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속 무관 출신 버나도(John B Bernadou)라는 인물을 파견하여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영국 역시 이러한 필요에 위해 자원 전문가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부임한 사람이 바로 윌리엄 리처드 칼스이다.

윌리엄 리처드 칼스는 1848년 영국 워릭에서 태어났다. 말보로 대학을 졸업하고 1886년 헬렌 제임스(Helen Maude James)와 결혼한 그는 1867년 베이찡 주재 영국공사관의 통역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후 1882년 공사관의 서기관 대리로 승진하였고 1884년 3월 영국 공사 애스톤의 요청을 받아 한국 주재 영국영사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한편 칼스의 <조선풍물지>는 출간되자마자 유럽 각국에 상당한 관심을 끌게 된다. 특히 ‘네이션(Nation)’지는 서평을 통해 은자의 나라 한국에 들어가 직접 생활하고 쓴 책이라서 매우 흥미롭다고 평할 정도였다. 책에 따르면 칼스가 45일 동안 북부 지역을 탐사한 거리는 1200km에 이른다고 한다. 얼마나 꼼꼼히 들여다 봤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지하 자원의 탐사뿐만 아니라 지층의 고도를 환산하고 마을의 호구 수와 마을과 마을간의 거리, 여행하며 묵었던 숙소의 벽에 쓰여있는 낙서까지도 기록했다. 또한 맹수와 강도의 습격을 받는 등 온갖 위험을 겪으면서도 탐사를 계속했다고 한다. 심지어 인삼 재배와 꿩 사육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에 평 또한 빠트리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목참판’으로 불리며 대한제국 정부의 외교, 재정 고문과 인천 해관의 수장을 맡고 있던 ‘뮐렌도르프’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에서 커피가 등장하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뮐렌도르프씨는 외부(Foreign Office)의 참판이었을 뿐 아니라 조선세관의 책임자였다. 북양의 총독인 이홍장이 그를 왕에게 천거했고 그가 외국인이었다는 두 가지 사실로 인해 궁중에서나 밖에서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가 사는 집은 왕이 내려준 것으로서 지체 높은 사람들이 쓰는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모양은 이제까지 우리가 머물렀던 곳과 같았다. 우리가 보았던 숙소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깨끗했으며 도시와 길거리에서 보았던 것을 생각하니 조선에 있는 독일인 집의 안락함에 우리는 감사했다. 가구가 도착하여 이제 우리는 좋은 곳에서 씻을 수 있고 커피를 마시게 되는 사치스러움에 감사하게 되었다. 

흔히 한국의 커피 역사를 말 할때 고종이 최초로 1896년 아관파천시 피신해 있던 러시아공사관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칼스의 기록에 따르면 무려 10여년 전에 이미 한국에서 심심치 않게 커피가 유통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제물포를 통해 입국할 당시 목조 2층 주택으로 호텔 영업을 시작했던 대불호텔에 관하여 ‘나의 숙소는 거류지에서 단 한 채밖에 없는 2층집의 위층이었다. 앞의 창문을 통해서 바다의 전경이 내다보이며 마루 건너에 집주인과 그의 친구가 살고 있었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곳에서 식음료를 서비스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한국 최초의 호텔 커피점이라 알려진 손탁 호텔 이전에 제물포 대불호텔에서 이미 호텔 커피점을 운영했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밖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도 종종 내비쳤는데 갑신정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들이 사용한 방법에 관하여 말하자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암살이나 살인이 어떠한 모습으로 비쳐질까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나라에서는 이런 식의 행동이 어느 대신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늘상 쓰여졌던 방법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민영익의 아버지도 몇 년 전에 정적이 보낸 폭약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임오군란 당시에 왕비의 민씨 일파를 제거하려는 대원군의 음모를 피하기 위해 스님으로 변장하고 시골로 피신한 적이 있었다. 1884년에도 음모자들이 보기에는 몇 년 전에 폭약을 배달하여 정적을 죽였을 때와 같은 호기를 보였던 것 같다. 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민비와 민씨 일가가 장악하고 있는 권력을 드디어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갑신정변은 조선인들보다 조선에서의 일본과 중국의 입장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조선풍물지>에서 특별히 인상깊은 또 한 가지는 책에 수록된 삽화다. 19세기 말 작품을 많이 남긴 풍속화가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 ?~?)의 그림이다. 당시 한국인의 다양한 모습과 풍속을 표현하고 있어 최근 많은 연구 대상이 되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들은 인천, 부산 원산등 개항지에서 서양인들에게 주로 판매되어 한국에서보다는 외국에 많이 소재되어 있다. 구한말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일조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한편, 분꽃나무(Korean spice viburnum)의 영어 꽃말은 [I die if neglected]이다. 이 말은 [나는 방치되면 죽는다]혹은 [나는 무시당하면 죽는다] 라고 번역이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민속학자 칼스의 시선이었을까? 아니면 우연히 정착된 의미였을까?

칼스는 이후 주한 영국영사관 영사직을 포함하여 18개월의 한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1885년 8월 상하이로 출국하였다. 상하이에서 부영사, 충칭에서 영사직을 거쳐 베이찡 주재 총영사직을 마지막으로 외교관 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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