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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엠마 크뢰벨(Emma Kroebel)

리디언스
2020-11-08
조회수 177

엠마 크뢰벨(Emma Kroebel)


1905년 9월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푸른 눈의 한 여성이 도착한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다. 앨리스는 워싱턴 사교계에서 활달한 성격과 미모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던 여성이었다. 





그녀가 입국한 1905년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침탈 야욕으로 기세에 한껏 오른 시점이다. 당시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오직 미국의 힘과 도움이 절실했던 시점이었던지라 고종과 대한제국 황실은 앨리스를 미국의 공주로서 대하며 국빈 이상으로 극진히 대접했다. 물론 앨리스의 방한은 아버지인 미국 대통령을 대신한 아시아 순방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행중에 앨리스의 약혼자인 ‘롱워스’ 상원의원이 포함되어 있었던 걸로 보아 개인 여행에 불과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그녀는 방한 일정 대부분을 관광에 할애했다.

더욱이 앨리스가 입국하기 전 이미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국을 지배하는 것을 상호 묵인하는 내용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었음에도 고종과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황실 전용 열차를 내주는가 하면 화려한 오찬을 함께 했으며 앨리스가 통과하는 도로의 정비를 해주면서까지 환대했다. 

10박 11일이라는 짧지 않은 방한 기간 내내 엘리스는 각종 무례한 기행으로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시해당한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에서 무덤 앞 석상에 올라 탄 채로 사진을 찍은 일이다. 자칫 단순한 헤프닝으로 묻힐뻔한 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당시 황실 의전담당관으로서 외교 전례를 맡고 있던 독일 여성  ‘엠마 크뢰벨(Emma Kroebel)’이 펴낸 책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 Wie ich an den Koreanischen Kaiserhof Kam>(1909)에 의해서였다.  


갑자기 뿌옇게 먼지가 일더니, 위세 당당하게 말을 탄 무리가 나타났다. 바로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 공주’와 그녀의 약혼자, 그리고 수행원들이었다. (중략) 붉은 색의 긴 승마복에 짝 달라붙는 바지를 무릎까지 올라오는 반짝거리는 가죽장화에 집어 넣고, 오른 손에는 말 채찍을 들고 있고, 심지어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는 미국 대통령 딸의 모습을 고위층 하객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녀의 관심은 오히려 무덤가에 세워져 있는 각종 수호석상들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한 석상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약혼자에게 눈짓하자, 그는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다. 황실 가족의 묘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얼굴 찌그리게 한’ 행동에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 (엠마 크뢰뵐, 민속원 P 236~237)






책이 출판된 후 1909년 11월 17일자 뉴욕타임즈에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었으나 앨리스와 동행했던 약혼자 롱워스 하원의원은 그런 일이 없었다며 오히려 엠마 크뢰벨을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주한 한국 공사관에서 부영사로 근무했던 윌러드 스트레이트(Willard Straight)가 찍은 사진들이 발견됨으로서 엠마 크뢰뵐의 기술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수전 손탁(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엠마 크뢰벨 (맨 오른쪽)


엠마 크뢰벨 (Emma Kroebel)은 1872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1901년 사업가 에른스트 크뢰벨(Ernst Kroebel)과 결혼하여 중국 칭다오에서 살고 있던 중 대한제국 황실로부터 외교전례를 담당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동안 업무를 전담했던 ‘손탁’ 후임이었다. 이를 수락한 크뢰벨은 1905년 여름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1년여의 기간동안 정식으로 황실 의전 담당관을 맡게 된다. 비록 한국 체류 기간은 1년 남짓했으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교육 예술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매우 예리한 시각으로 기록했다. 한국인들의 외모에서부터 의상, 여성들의 삶, 종교, 가옥 구조 등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가령 황실의 음식문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비난 섞인 어조로 썼다.


무엇보다 궁중에서 차려지는 음식문화를 보면 온통 서양식, 특히 프랑스식 요리가 연회 식탁을 차지하고 있다. (중략) 트뤼플 파스타에, 생굴이며, 캐비어가 일상적인 음식으로 식탁에 빠지지 않았고, 프랑스산의 풍미있는 샴페인은 원산지의 어는 연회에서보다 훨씬 더 풍성했다. 조선 황실의 연회에 참석하면, 마치 서양의 어느 제후가 베푸는 연회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p 199)





뿐만 아니라 무능을 일삼다 결국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말았던 고종과 대신들을 비난하는 내용도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한국 지배와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한 점이 눈에 띈다. 


천막에는 약 500여 명이 앉을 수 있었다. (중략) 내게도 영예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토의 측근들이 앉은 자리에 나도 끼어 앉아서 이토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독일을 수차례 방문한 적 있었던 이토는 독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를 그저 독일인 여성 정도로만 대우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독일인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독일에 대해서도 역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이토는 독일 군대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가 독일인들은 청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칭찬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독일의 정치가 중에서 특별히 독일공화국을 세운 비스마르크를 존경했고, 비스마르크의 국제적인 외교술과 정치적 재능을 끝없이 칭찬했다. (p 248~249)


책의 후기에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인쇄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빌어 꼭 추가해야 할 사건이 일본의 거물 정치가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일어났다. 언제부터 내가 우려하고 있던 일로 이 저서에서도 ‘조용’하게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한 한국인이 미움에 가득 차서 조선을 점령하고 정치적으로 억압하는 일본인을 살해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가리킨다. 내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이번의 ‘혈투’가 다음 일본인 권력자에게 같은 ‘혈투’로 대하지 않고, 조선의 정치와 국민에게 냉정하게 행동을 취하기를 바란다. 그럴 경우에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베를린에서 1909년 10월 저자 (p 259)


혹자는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이와 같은 묘사에 대해 엠마 크뢰벨이 매우 안타까워 하고 있다며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으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일본의 폭압으로 이어져 한국이 더욱 곤란해 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1905년~1906년 당시 한국이 처해 있던 현실을 대한제국 황실의 최근접 거리에서 제 삼자의 시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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