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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 (Ernst Von Hesse-Wartegg)

리디언스
2020-10-30
조회수 132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 (Ernst Von Hesse-Wartegg)

 

최근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들고나올 때마다 국내에서 종종 인용되는 자료가 하나 있다. 1895년에 독일에서 발간된 <조선, 1894년 여름 Korea, Eine Sommerreise nach dem Lande der Morgenruhe 1894>이라는 책이다. 흥미롭게도 책의 표지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저자의 한국식 이름인 듯한  ‘許世華 高麗’(허세화 고려)라고 표기되어 있다. (한국어 번역본은 2012년 출판사 '책과함께'에서 정현규 역으로 발간되었다)


Korea, Eine Sommerreise nach dem Lande der Morgenruhe



조선 1894년 여름 (책과함께)



이 책의 이탈리아 번역판(La Corea, Hesse-Wartegg, 1895) 말미에 한반도와 일본, 중국 일부를 포함한 주변 지역을 포함하고 있고, 흥미롭게도 여기에 독도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두 개의 조그만 섬으로 그려져 Liancourt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당시 청과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한국의 운명과 맞물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La Corea, Hesse-Wartegg






책의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26년 전 1894년 대한제국 시절 한국을 여행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세계여행가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Ernst Von Hesse-Wartegg)이다. 외교관이자 작가이기도 하지만 1872년부터 1900년까지 무려 28년간이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20여 권의 여행기를 발간한 여행가로서 더 유명하다.


(Ernst Von Hesse-Wartegg 1851~1918)



헤세-바르텍이 입국한 1894년의 한국은 그야말로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일어난 급변하는 정세였다. 하지만 헤세-바르텍은 신변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부산을 통해 입국한 이후 인천과 서울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덕분에 정치 상황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풍경, 풍습을 망라하여 다양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한국과 한국인은 그야말로 미개한 민족, 국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소 과장되거나 오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냉혹하리만큼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부산의 짐꾼들은 전부 조선인이고 말과 소가 이용되는 일은 드물다. 건장하한 장정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조선, 1894년 여름, 책과함께 p 23)  

조선 정크선은 길이15m, 폭6m, 깊이3m 정도다. 조악한 나무판으로 건조되었으며, 바닥이 평평하고 용적은 대략 200톤이다. 쉴 새 없이 물을 퍼내야 할 정도로 엉성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보험 가입도 어렵다.  이것이 조선에서 가장 큰 배들이다. (p 39)

일본은 제물포를 점령했고, 이미 수도마저 점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조선군보다 행동거지가 더 낫다. 그들은 모든 물품을 현금으로 지불했고, 예의바르게 행동했으며, 술에 취한 채 다니지도 않으며 규율이 잡혀 있었다. (p 55)

공공용지는 오직 길바닥뿐이며, 온갖 오물과 쓰레기 그리고 담장에서 떨어진 조각들은 문 앞에 버려진다.  일고여덟 살이 되도록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길에서도 행인들을 향해 용변을 보는 일이 흔하다. 집 안은 너무 습하고 어둡고 더우며 해충이 많아 안락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집안일을 길거리에서 처리한다.  밤이 되면 집 앞의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잔다. (p 84)

백성들이 얼마나 노름에 빠져 있었던지, 정부는 몇 년 전 카드놀이를 법적으로 금지해야만 했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카드놀이는 투전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돈 싸움이란 뜻이다. (174쪽)


그럼에도 헤세-바르텍은 기본적으로 한국민은 우수한 민족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처참한 상황은 한국민 자체의 무능력 보다는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한 관리들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국민이 글자를 쓸 줄 아는데, 이는 예를 들어 이탈리아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p 212)

이들은 자기들끼리도 그렇지만 낯선 이방인에게도 매우 정직하다. 절도와 강도는 비교적 드물며, 살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5년간 전체 구역에서 살인은 두 건 밖에 없었다.  (p 24)

신체적인 면에서 이들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동아시아의 이유들을 훨씬 능가 한다. 이들의 키와 건장한 체격, 건강한 외는 유럽의 여행자들에게 커다란 놀라움을 안겨준다. 나는 이 점에서 조선인과 견줄 수 있는 민족을 동아시아에서 본 적이 없다. 이들은 외양적인 몽골 유형이라기보다는 코카서스족에 가깝다. 조선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이 너무나도 보잘것 없어서, 사람들은 조선인들도 모든 점에서 보잘것없는 백성이려니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들은 가난하고, 무지하며, 게으르고, 미신을 신봉하고, 이방인을 꺼린다. 하지만 이러한 속성들은 지조 없고 탐욕스러운 정부탓에 생긴 불행한 결과일 뿐이다. 이 정부는 수백 년 동안 백성들 내면에 있는 더 나은 것에 대한 충동을 조장하기는커녕 방해해왔다. 조선인들의 내면에는 아주 훌륭한 본성이 들어 있다. 진정성이 있고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루어낼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이웃인 잽싸고 기민한 일본인들처럼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더라도, 한때 이들의 군주국이었던 중국보다는 훨씬 빠를 것이다. (p 232)


한편 제물포항에서 개항장 일대를 바라보고 기록한 대단히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제물포를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대충 중국 닝보(寧波)나 푸저우(福州)와 같이 탑과 사원들이 있고 기묘하게 흰 지붕들이 있는 아시아의 도시 모습을 기대했다. 이런 기대와 달리 내 눈앞에는 아주 근대적인 유럽의 도시가 펼쳐진 것이다! (중략) 왼편 끝의 언덕에는 영국 영사의 훌륭한 빌라가 있고, 그 뒤에는 몇몇 조선 요새가 능보와 성곽을 드러내고 있다. 오른편 끝자락에는 또 다른 언덕이 있는데, 여기에는 매혹적인 일본식 찻집과 정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두 언덕 사이로 유럽식 고층 건물이 있다. 그 뒤편으로 세 번째 언덕이 있는데, 이 위에는 사각형의 튼튼한 탑을 갖춘 당당한 건물이 있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정원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넓은 돌계단이 도시와 이곳을 이어주고 있다. 나는 그것이 아마도 조선의 수령이나 관찰사의 거주지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내가 우리 배의 선장에게 이런 내용의 질문을 하자 그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여기에서 조선인은 그 어떤 것도 명령할 수 없습니다. 조선 관청도 없습니다. 저기 뒤에 보이는 아름다운 집은 마이어 씨 댁입니다.” (중략) 지금까지 일곱 개의 봉인으로 닫혀 있던 땅이 유럽인에게 개방되자마자, 이 땅에 들어온 최초의 유럽인 가운데 한 자리를 마이어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마이어 상사는 조선에서 명성 있고 사랑받는 가장 영향력 있는 상사다. (p 47~48)


단순히 활발한 제물포 개항장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제물포에 청.일조계지와 각국 조계지가 형성되어 해당 국가들의 자치권이 행사되고 있는 현실을 헤세-바르텍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참고삼아 덧붙이자면  바르텍의 부인은 19세기 말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친 오페라 가수 미니 하우크(Minnie Hauk)다. 또한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절친으로서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글에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의 여행기를 자주 인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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