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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이사벨라 버드 비숍 (Isabella Bird Bishop)

리디언스
20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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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비숍 (Isabella Bird Bishop)


1894년 첫 방문 이후 1897년까지 총 네 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경험을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 1898년>이라는 책으로 발간한 영국 출신의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Isabella Bird Bishop)은 1831년 영국 요크셔의 보로브리지 홀에서 성공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이사벨라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하여 갖가지 병세로 시달리다 환경을 바꿔보라는 의사의 제안에 따라 1854년 아버지가 준 100파운드로 미국 여행을 시작한다. 그녀의 첫 책 <미국에 간 영국 여인 The Englishwoman in America, 1856>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듬해 1857년에는 스코틀랜드와 캐나다를 여행한다. 하지만 1858년에 든든한 지원자였던 아버지를, 8년 후인 1866년엔 어머니마저 여의게 되었다. 자유로운 여행이 불가능해진 이사벨라는 이후 여동생과 함께 지냈으나 건강상의 문제는 여전했다. 그러다 마침내 1872년 다시 여행을 시작하여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거쳐 하와이(당시 샌드위치 제도)에 도착한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자연과 원주민들의 야성적인 삶과 승마를 즐기면서부터 이사벨라의 건강이 좋아졌다. 1879년 하와이 여행을 다룬 두 번째 책을 발간 한다.  

이후 미국 콜로라도 주로 건너가 로키 산맥 여행을 마친 후 <로키 산맥 속의  어느 숙녀의 삶 A Lady's Life in the Rocky Mountains, 1879>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밖에도 일본과 중국 등을 여행하다 1889년 인도와 티벳 터키 이란 등을 여행했다. 

이사벨라 비숍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해는 1894년이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바로 그 해다. 당시 한국을 처음 경험한 비숍의 평가는 그야말로 부정적인 시각이 전부였을 만큼 비관적이다.






지금까지의 조선의 교육은 애국자나 사상가나 정직한 사람을 산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교육은 그렇게 수행되어 왔다. 흔히 서당에서 학생들은 방바닥에 앉아 그들 앞에 한문책을 펴놓고 몸을 좌우와 앞뒤로 흔들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중국의 고전에서 선정된 과목을 가장 크고 가장 시끄러운 소리로 읽고 암송한다. 이러한 교육은 사고력을 발전시키거나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도록 하지는 못한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p. 371)

서울에는 예술품이 없으며 골동품이 드물고 공원도 없다. 왕의 거둥 이외에는 볼 만한 것이 없으며 극장도 없다. 다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서울에는 없다. 서울은 유서 깊은 도시이지만 유적도, 도서관도, 문학도 없으며 최근에는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심하여 사원을 남겨 놓지 않았다. 반면에 아직도 조선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미신 때문에 묘비 하나 남은 것이 없다 (p. 70)


이사벨라 뿐만 아니라 개화기 시절 한국을 묘사한 서양인들의 시각은 아쉽게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기반한 관점이 거의 대부분이다. 더우기 한국을 직접 체험한 인사들 조차도 같은 유형의 기록을 남겼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원래 유럽에서 동양학(東洋學) 혹은 동양의 문화와 산물에 대한 탐닉에서 비롯된 일종의 동방취미(東方趣味)를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는 주요 준거가 되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과 서구 제국주의를 합리화 시켜 동양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되었다. 

이와 같이 오리엔탈리즘이 동양학 혹은  동방취미라는 본래 의미를 벗어나 서양의 동양에 대한 부당한 인식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adie Side)가 저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에서 사용하면서 부터였다.








오리엔탈리즘이란 기본적으로 서양은 도덕과 문명이 완성된 사회로서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고 청결하나 동양은 그 반대로 야만과 비문명 상태이므로 비도덕적이며 열등한 사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 열강들이 개화와 계몽을 목적으로 동양을 지배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며 이 과정에서 부득이 하게 발생하는 착취 행위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사벨라 비숍 역시도 처음엔 이러한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 본 것임에는 틀림없다. 더우기 일본에 의한 한국의 지배에 대해서도 철저히 일본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추진한 소위 일련의 새로운 개혁(Reformation : 甲午更張)은 1894년 6월 23일 일본 군대가 경복궁(景福宮)을 강제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공포된 제도적 변화는 서울에 주재한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잠시 머물렀던 일본인 고문에 의해 세부 항목까지 구상되었다. 당초에 일본은 정부 안의 여러 가지 권력 남용을 개선하고 현재 실행되고 있는 개혁에 관한 노선을 마련해 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의 정치 제도를 일본의 정치 체제와 유사하게 만들려고 했던 견해는 당연하며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p. 358)


하지만 이사벨라 비숍의 한국에 대한 편향된 시각은 중국 봉천과 시베리아, 연해주 등의 조선인 이주민들의 생활상을 경험한 후 크게 바뀌게 된다.


조선에서 나는 그들이 열등 민족이었고 삶의 희망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프리모르스크에서 나는 나의 이런 의견을 수정해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그들 자신을 부유한 농민층으로 끌어올리고 러시아 경찰이나 러시아 정착민들, 군인들과 똑같이 근면하고 좋은 품행을 가진 우수한 성격을 얻은 이 조선 사람만이 예외적으로 근면하고 검소한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대개 기근으로부터 피난 온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재산과 일반적인 태도는 조선에 있는 그들의 동포들이 정직한 행정과 수입에 대한 정당한 방어가 있다면 천천히 인간으로 발전해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p.229)


또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말미에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조선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국가는 아니다. 조선의 자원은 고갈된 것이 아니라 미개발 상태이다. 성공적 경작을 위한 조선의 능력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기후는 멋지고, 강수량은 풍부하며, 토양은 비옥하다. 언덕과 골짜기는 석탄, 철, 구리, 아연, 금을 매장하고 있다. 1,740마일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어장은 국부의 원천일 것이다. 조선에는 근면하고 호의적인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p.423)


이밖에도 19세기 말 한국의 풍습과 문화, 전근대적 교육 문제,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수탈 실태를 세세히 기록한 점과 특히 여성들의 생활 상태와 노동에 대한 실상을 여성의 시각으로 날카롭게 분석하여 기록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남편들이 계속 흰 옷을 고집하는 한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냄새 나는 하천에서, 궁궐 후원의 우물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물웅덩이에서, 아니 주택 밖 실오라기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중략)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의 노예다 (p.60)

농촌 여성들에게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고된 일을 며느리에게 전가할 때까지 꾸준히 일만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서른 살에 이미 쉰 살로 보이며 마흔 살에 이가 거의 빠진다. 개인적인 몸치장마저도 인생의 초반에 사라져 버린다. 삶의 일상적인 생활을 벗어나면 그는 땅과 공기를 사람들에게 예측하게 하는 귀신을 생각하는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조선에서는 여성의 지위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란 정말로 어렵다. (p.331)


1904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73세의 일기로 숨지기전 영국의 그 어떤 곳보다도 한국이 집처럼 느껴진다며 그리워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을 사랑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한국을 바라보는 이사벨라 비숍의 시각에는 상호 모순적인 면이 존재한다. 한국인의 장점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높히 평가했는가 하면 철저하게 서구 제국주의 시민의 입장에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옹호하고, 한국민을 게으른 민족으로, 더불어 한국 사회를 미개한 전근대적 사회로 묘사했다. 비록 객관적 기술이라는 형식을 빌었으나 오히려 앞서 언급한대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정상적 관점으로 한국을 잣대질 했다는 비판은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한국 여성이 처한 현실을 어떤 외국인 보다도 냉철하게 파악, 비판했다는 점과 최종에는 한국에 대한 시각이 애정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이사벨라 비숍을 기억해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제물포구락부의 스페셜 블렌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의 애정을 담았다. 무겁지 않은 바디감 대신 다크 초콜렛의 쌉싸롬한 맛이 일품이다. 거기에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함과 입안에 오래 머금고 있을수록 도드라지는 산뜻한 산미가 좋은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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