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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문학 -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민음사)

리디언스
2020-10-03
조회수 138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민음사)

 






터키 작가로는 최초로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은 등장인물들 각자의 내러티브 형식이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그린 일종의 역사 추리 소설이다.

소설의 주제는 두 개의 축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축은 16세기 말 오스만 제국 당시 무릇 회화는 변칙적 기법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음으로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화가들과 원근법으로 대표되는 서양 화풍을 배운 화가들의 갈등이다. 전자는 신의 세계를 의미하고 후자는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의미한다. 







세밀화를 그리는 궁중 화가들이 연이어 살해되는 사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세밀화가들을 살해한 살인범은 또 다른 세밀화가로 밝혀진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동서양 문명의 충돌 내지는 전통과 새로움의 갈등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전통 세밀화라는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신념과 고뇌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또 한 축은 ‘셰큐레’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둘러싼 세 남자들의 이야기다. 이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 섥혀 읽는 재미만으로도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터키 전통 예술인 세밀화를 다룬 소설답게 세밀화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뿐 아니라 당시의 문화와 예술, 혹은 생활상 전반에 걸쳐 흥미진진하면서도 내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커피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즐거움과 흥미를 돋우어 준다. 커피는 에티오피아를 원산지로 한다. 그러나 역사로 기술되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용되기 시작한 커피가 진정 화려한 영광을 얻게 되는 건 바로 이슬람 덕분이다. 당시의 모든 분야에서도 그랬겠지만 커피에 대해서는 이슬람 지역이 유럽보다 훨씬 더 앞선 지역이었다. <내 이름은 빨강>을 읽다 보면 당시 소설의 배경인 터키에서 어느 정도로 커피가 생활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터키 지역에서는 커피를 어떤 방식으로 추출해서 마셨을까?





시대적 배경이 된 16세기 말 즈음의 커피 추출법이란 현대의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 방식이나 드립 방식이 아니라 가장 원시적인 추출 방법인 침지식이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즉 커피를 곱게 분쇄한 후 뜨거운 물에 넣어 우리거나 아예 끓여내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일명 터키쉬 커피 (Turkish Coffee)라 부른다.

터키쉬 커피는 ‘체즈베(Cezve)’라는 도구로 끓이는 것이 정석이다. 뚜껑이 없는 도구를 체즈베라 하고 뚜껑이 달린 도구를 “이브릭(Ibrik)’이라 부르는데 웬일인지 우리나라는 물론 심지어 유럽에서 조차 둘 다 이브릭이라 부른다. 아무튼 유럽에서도 혼동하고 있다니 체즈베로 부르든 이브릭이라 부르든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입을 다물고, 내가 얼마나 멋진 빨강인지 한번 들어 보라. 색을 아는 세밀화가는 인도의 가장 더운 지역에서 온, 최상품의 말린 빨간색 벌레를 절구에 찧어 고운 가루로 만든 뒤, 이 빨간 가루 5디리헴, 비누풀 1디리헴, 그리고 로토르 ½ 디리헴을 준비한다. 물 3오카를 냄비에 담아 비누풀을 넣고 끓인 뒤, 로토르를 물에 넣고 잘 젓는다. 그리고 맛 좋은 커피를 한 잔 마실 동안만큼 끓인다....” (내 이름은 빨강, 민음사 333p)

소설에서 ‘빨강’이 화자로 등장하여 자신(빨강색)을 만드는 법이라며 말하는 대목이다. 멋진 빨강을 만들어 내는 시간이 ‘맛 좋은 커피를 한 잔 마실 동안’이라니 낭만적인 표현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이다.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커피와 빨강색이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커피의 색깔을 두고 짙은 갈색, 혹은 검정색으로 연상하지만 사실 잘 익은 커피 열매의 본래 색깔은 빨간색이다. 오르한 파묵이 작품에서 얘기한 궁극의 고귀한 색 역시 빨강이다. 그러고 보면 투명한 유리잔에 잘 추출된 커피를 붓고 햇빛을 비쳐 보면 와인색과 비슷한 붉은 색이 감돌기도 한다.  커피와 빨강색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오르한 파묵이 굳이 커피와 빨강을 연관짓거나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은 아니겠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커피 냄새가 풍기는 듯 하고 이내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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