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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커피로 읽는 인물 -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 (Rosetta Sherwood Hall)

리디언스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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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 (Rosetta Sherwood Hall)

한국 최초의 양의사가 여성이었다는 것과 그녀를 의사로 키운 사람 역시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 출신 로제타 셔우드 홀 (Rosetta Sherwood Hall)은 1890년 의료선교사로 처음 한국에 온 후 의료 사업을 펼칠 당시 통역이었던 이화학당 교사 로드 와일러가 독감에 걸리자 이화학당의 소녀들 중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아이였던 ‘박에스더’에게 통역을 맡긴다. 박에스더의 재능을 알아 본 로제타 셔우드 홀은 미국 유학을 보내는 등의 후원으로 박에스더를 한국 최초의 양의사로 성장하게 만든다.




25세 때 조선올 무렵의 셔우드 홀



한국 로제타 셔우드 홀이 한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진료를 했던 곳은 1887년에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이다. 보구여관은 당시 병원에 자유로이 내원할 수 없었던 시대상을 반영하여 여성만을 위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이다.  ‘보구여관’의 뜻은 ‘’보호하고 구하는 여성들의 집’이라는 뜻이다. 1887년 메타 하워드라는 여의사에 의해 개원하였으나 병환으로 귀국하게 되어 로제타가 후임으로 오게 된 것이다. 




보구여관



로제타는 1890년 10월 14일 이곳에 부임하자마자 다음날부터 곧바로 진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간호사등의 보조 인력이 전무했던 터라 진찰뿐 아니라 환자의 맥박과 체온 측정은 물론 약까지 혼자 조제해야 했다. 심지어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치과, 정신과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진찰과 진료, 수술을 혼자서 도맡아 해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당시 로제타는 첫 10개월 동안 종양 제거, 백내장, 언청이, 종기 수술등 총 2359건의 진료를 했다고 한다. 이중에 왕진이 82건, 입원환자는 35명이었다. 처방전 발행건수는 무려 6000건이 넘었다.


1891년 약혼자 윌리엄 제임스 홀이 한국에 오자 두 사람은 1892년 6월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남편 윌리엄은 곧바로 감리교의 평양선교 책임자로 임명되어 로제타와 윌리엄은 평양과 서울에서 각각 생활해야만 했다. 그동안 로제타는 여성만을 위한 야간 진료소를 열었고, 사대문밖 서민 여성들이 용이하게 진료를 받게 하기 위해 동대문 인근에 진료소를 열었다. 이 진료소가 바로 이대부속병원의 전신이었던 동대문 부인병원이다.



로제타 셔우드 홀 부부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 직후 전염병이 창궐한 평양에서 남편 윌리엄이 발진디푸스에 감염되어 사망하고 만다. 그의 나이 고작 34세였다. 로제타는 어쩔 수 없이 돌을 갓 넘긴 아들 셔우드와 임신중이었던 둘째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귀국하고 만다. 2년 뒤인 1897년 11월,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만 다음해에 또 다시 딸 에디스를 잃고 만다. 그럼에도 로제타는 평양에 여성치료소 ‘광혜여원’을 열었고 한국 최초의 맹학교인 ‘에디스 마그리트 어린이 병동’을 개원했다.   





로제타와 두 자녀 셔우드 홀, 에디스 홀




딸 에디스를 잃고 2년 후 친정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결국 로제타는 신경쇠약으로 미국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을 마치고 1903년 다시 돌아온다. 1928년에는 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설립하였고 이어 인천간호전문보건대학을 설립했다. 이후에도 오로지 한국 여성 교육과 의료 봉사를 위해 헌신하다 1951년 4월 5일 “자신의 시신을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남기고 유명을 달리한다. 로제타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남편과 딸이 잠들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묘지공원에 안장되었다. 한편, 남편 윌리엄 사망 당시 고작 2살이었던 아들은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보급하는 등 어머니 로제타의 뜻을 이어 평생을 한국 의료 발전에 헌신한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다. 

양화진에 묻혀 있는 홀 가족은 모두 5명이다. 로제타 셔우드 홀과 그의 남편 윌리엄 홀, 딸 에디스 홀, 아들 셔우드 홀과 그의 아내 메리안 홀이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2대에 걸쳐 오직 한국을 위해 생을 바쳤던 셈이다.  의료 선교사라는 사명으로 한국에 왔지만 그녀의 헌신을 단지 종교적인 신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로제타는 이 모든 일들을 6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일기로 기록했다. 사적인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제물포구락부는 로제타 셔우드 홀의 생애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미로 2층 전면 헐버트 홀 안쪽의 공간을 한국을 사랑하고 헌신했던  로제타 셔우드 홀 룸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다.


제물포구락부의 스페셜 블렌드 <로제타 셔우드 홀>은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바디감이 좋다. 말린 과일의 달콤함과 정향과 시나몬의 플레이버에 쌉쌀한 다크초콜렛의 풍미가 풍부하다. 오로지 한국 근대 여성 교육과 의료 봉사에 자신의 생애를 바친 로제타 셔우드 홀의 행적처럼 마시고 난 다음의 여운에 오랫동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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