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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커피행복한 풍경에는 커피가 어울린다, 야간비행 (생텍쥐페리, 펭귄클래식)

리디언스
2020-08-10
조회수 156

야간비행 (생텍쥐페리, 펭귄클래식)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팍팍한 삶이 주는 어떤 문제들에 맞닥뜨려 손을 놓고 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는 책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한테는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 그런 종류의 책이다.






<야간 비행>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남아메리카의 우편비행사업에 참여하여 수없이 비행 임무를 수행한 뛰어난 직업 조종사였다. 문학 작품을 남긴 작가로서는 매우 특별한 경우다. 1936년 비행 사고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다가 극적으로 귀환했던 경험은 후일 <어린왕자>로서 빛을 발하게 된다. 1944년 정찰 비행을 위해 이륙한 생텍쥐페리는 또다시 실종되었고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독일 전투기에 격추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 정확한 실종 원인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야간 비행>의 조종사 파비앵 역시 지상으로 귀환하지 못했으니 마치 작가 생텍쥐페리 본인의 회고록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연대순으로도 <어린왕자>(1943) 보다 훨씬 일찍(1931) 집필된 작품이니 창공의 영원한 별로 남는 것이 비행사인 자신의 운명이라는 걸 일찌감치 예감한 셈이 되었다. 말하자면 남미에서의 우편비행사업 경험과 언젠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사고에 대한 예견이 모두 녹아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대문호라 일컬었던 앙드레 지드가 서문을 쓰는 등 찬사를 받으며 발표되었고 곧바로 전 세계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던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이다.

<야간 비행>의 시대적 배경은 항공기의 야간에 항공기를 운항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던 항공 역사 초기 시절이다. 어느 날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각각 우편물을 싣고 이륙한 세 대의 항공기가 날아온다. 비행기들이 착륙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이들의 우편물을 인계받아 즉각 유럽으로 운송할 또 다른 비행기가 이륙준비를 하고 있다. 당시의 항공기들은 항속거리가 매우 짧았다. 그러므로 장거리로 운송해야 했던 국제 우편의 경우는 항공기에서 항공기로 이어지는 릴레이식 운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칠레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무사히 안착했지만 파타고니아발 비행기의 조종사 파비앵은 뜻하지 않게 사나운 태풍을 만나게 된다. 무시무시한 폭풍우에 휘말린 파비엥의 비행기는 어지럽게 표류하게 되고 가까스로 태풍을 벗어나 창공 위로 솟구치지만 바닥난 연료로 인해 영원한 비행을 맞이하게 된다. 추락하게 된 것이다. 추락은 곧 죽음이고 종말이다. 비행사인 파비엥은 물론 지상의 항공 우편국 책임자인 리비에르 역시 토막같이 이어지는 짧은 무전으로 파비앵의 비행기가 귀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지상의 직원들이 이 사태에 대해 동요함에도 불구하고 리비에르는 무심할 정도로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 결국, 소설은 파라과이에서 출발한 세 번째 비행기의 도착 즉시 우편물을 옮겨 싣고 즉시 이륙할 수 있도록 비행기를 대기시키라고 명령하면서 소설을 끝이 난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내내 한 가지 의문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항공운송책임자인 리비에르에 대한 의문이다. 동료의 비극을 뒤로하고 비행기 이륙을 지시하는 리비에르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저 직무에 충실한 냉혹한 책임자일까? 아니면 직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고뇌의 인간일까?

리비에르에 대한 평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의 암운이 짙게 깔려있던 1930년대의 유럽에서 이른바 행동주의 문학을 추구했던 생텍쥐페리를 생각해 봐야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실존주의 철학과도 맥이 통하는 행동주의 문학은 주어진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 개개인의 내면적 투쟁이 행동 자체로 이어질 때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셍텍쥐페리가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파비앵이 귀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리비에르가 내린 이륙 명령의 당위성이다. 인간의 멈추지 않는 행동과 실천이야말로 목표의 완성 여부를 떠나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메시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셍텍쥐페리가 말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혹시 그것은 리비에르에 대한 거창한 당위성이 아니라 이륙 명령을 내리기까지의 인간적 고뇌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 고뇌의 끝에는 파비앵이 악천후 속에서 상상한 따뜻한 불빛 아래에서 행해지는 커피 한 잔과 평범한 저녁 식사와 같은 소박한 삶이 있다. 개인이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루어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질문이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비에르 같은 인간들이 추구하는 실천 행동에 희생될 수도 있는 개인의 삶을 생텍쥐페리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작품 속에서 커피가 등장하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새벽 1시쯤 되면 그녀는 남편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이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고 있겠지......'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그를 위해 식사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했다> (야간 비행, 셍텍쥐페리, 펭귄클래식 p84)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오고 있는 파비앵이 안데스 산맥 인근에서 한창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시각, 남편의 안착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 시몬 파비앵이 여느 때처럼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평소처럼 비행을 마치고 귀가한 파비앵이 대하게 될 따뜻한 정경일 것이다. 고단한 비행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하는 식사와 따뜻한 커피. 파비앵이 감행하는 위험천만한 야간 비행의 대가가 고작 이런 거야? 라고 할 만큼 소박하고 조촐하다. 그러나 지켜야 할 과업이나 직무라는 것이 커피 한 잔이 함께하는 이런 풍경 속 개인의 소박한 삶이 서로 배치될 때 무조건 후자를 희생하면서까지 얻어내야 하는 건 아니리라.


파비앵 부부의 저녁 식탁에는 언제나 저렇게 무심한 듯 커피가 놓여 있었을 것이다. 만약 저 대목에서 커피가 묘사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하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행복한 풍경에는 커피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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