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구락부 스토리 아카이브

재즈,어번스케치,3D모델링,여행가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나만 볼 수 없던 이야기. 이젠 그 얘기를 해드릴게요.


근대건축이야기3D 근대문화유산

모비딕
2020-01-30
조회수 51

을미사변을 목격하면서 정치적으로 한동안 곤욕을 치른 사바틴은 1896년 서재필의 독립협회가 발주한 ‘독립문’ 설계를 시작으로 다시 본연의 건축가로 돌아간다. 독립문 완공 후 바로 이어서 영국 무역상사 홈링거양행 인천지사 사옥(1898)을 건설했다. 홈링거 양행은 러시아의 동청해상기선회사의 인천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건축 건을 계기로 그 회사의 인천지점장으로 취직했다. 건축일은 한시적이므로 생활고 해결을 위해 아예 직장에 취직한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다시 거주지를 옮겼다.

인천에 다시 정착한 후 사바틴은 그의 마지막 작품을 인천에서 완성한다. 그 작품이 바로 1901년에 건축한 제물포구락부이다. 미국인 데쉴러, 독일인 뤼일리스 등은 친목을 위한 클럽을 만들기로 하고 자금을 모았다. 이들은 건축 자금이 모이자 곧바로 사바틴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건설에 들어가 1902년 인천항이 내다보이는 응봉산 중턱에 제물포구락부를 개장했다. 넓은 당구장과 독서실, 그리고 근처에 테니스장을 갖췄다. 매달 10일에 만찬을 곁들여 연회를 열고 회원간 담소 혹은 유명 인사의 연설 경청 등으로 친목을 도모했다. 일본인들은 회원자격이 있었으나 끼지 못했다. 언어, 매너, 풍습, 네트워크 등을 따라가지 못해 무척 불편했을 것이다. 결국 ‘구락부’라는 일본말투의 공간이 생겼지만 그들은 자기들만의 사교장을 따로 갖게 된다. 결국 제물포구락부는 서양인 전용의 시설이 되었다. 사바틴의 ‘작품’ 중 현재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건축물 중 하나다.  
사바틴은 1902년 7월 대한제국으로부터 3년간 강화도 화강암 채석 이권을 획득했다. 아마 그의 건축물에 화강암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아예 채석권 까지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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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건물인데 긴 세월을 사이에두고 2020년에 처음알게 되어 더 새롭게 와닿네요.
모델링한 이미지만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근대건축물이어서...실물을 어서 확인해보고 싶네요...

연락처


주소: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남로 25

전화번호:032-765-0267

이메일:coreacartoonist@gmail.com

인천시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4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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