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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이야기내동교회

모비딕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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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 내동교회는 1890년 9월 29일 인천으로 들어온 코르프(Charles John Corfe) 주교에 의해 건축된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다. 원 건물은 한국 전쟁기에 훼손되고 현재 건물은 원래 성 누가병원이 있던 장소인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에 다시 세운 것으로 1956년 6월에 완공되었다.


성공회의 조선 선교는 1890년 9월 영국 해군 종군신부였던 코르프 주교와 내과 의사인 미국인 랜디스(Elibarr Landis, 한글명 남득시)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코르프 주교는 인천에 대지를 마련하여 한국의 첫 성당 건축에 착공했다. 

이렇게 하여 한국에서 처음으로 건축된 성공회 성당인 제물포 송학동 성당은 1891년 9월 30일 성미카엘성당으로 축성되었다. 한편 1981년 8월 송학동에 순한국식으로 병원을 건축했다. 병원은 ‘ㄷ’자 배치로 이루어졌고 ‘ㄷ’자형의 트인 쪽은 동쪽으로 한국인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대문은 남쪽에 있었고, 그 양쪽으로 환자 대기실, 약방, 진찰실, 랜디스 의사의 숙소, 그리고 창고가 있었다. 서쪽은 일꾼방, 부엌, 식료품 저장소, 연료창고, 그리고 목욕탕이 있었다. 

북쪽은 모두 온돌마루로 된 병실들이 있었다. 랜디스 의사는 공사가 완공되어 1891년 10월 성누가를 기념하는 첨례일에 새 병원에 입주하였다. 이 날 공식적인 행사는 없었으나, 병원문을 새로 연 날이 성누가 첨례일이었기 때문에 ‘성누가병원(St. Lukes Hospital)’이라고 명명되었다. 이는 누가가 의사인 전통적인 수호성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랜디스는 “성누가병원이라고 하는 이름은 한국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며, “선행으로 즐거운 병원(Hospital of Joy in Good Geeds)”이라고 번역한 ‘낙선시의원’(樂善施醫院) 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것만 보아도 랜디스 의사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남달리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랜디스는 장질부사에 걸려 1989년 4월16일에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연구를 위하여 수집했던 많은 서적들과 집필들 약 300여 권은 연세대학교 도서관의 ‘랜디스문고’에 보관되어 한국문화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이용되고 있다.

1913년 배드콕(Badcock, 한글명 박요한) 신부가 관할 사제로 시무하면서 성마카엘성당도 본격적인 교회의 면모를 갖추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1926년에는 1926년에 서품된 황석희(黃奭熙) 신부가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관할사제로 시무하게 되었다. 한국전쟁기 교회가 일부 파손되어 성마케엘성당이 성누가병원이 있던 내동 3번지로 이전하여 기공식을 거행하고 1956년 6월에 내동교회로 완공되었다. 건물의 형태는 지붕의 목조 트러스를 제외한 외벽을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중세풍의 석조이다.

‘병자’와 ‘고아’들을 위한 선교활동으로부터 시작된 선교적 특색을 살려 1993년 7월 성마카엘 종합 사회 복지관을 설립하여 지역 사회 복지의 중심 센터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1년 12월 25일 성탄절에는 그 간의 선교 활동을 정리하여 『인천 내동교회 110년사』를 발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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