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친목을 돕는 사교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1901년 우크라이나인 사바찐이 지금의 자유공원 기슭에 지상 2층의 벽돌조 건물을 지었다.
1914년 이후 일본재향군인회가 사용하면서 정방각으로 불렸으며, 미군의 장교클럽, 시립박물관, 문화원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2007년부터 제물포구락부의 옛 모습을 재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의 사교공간이라는 의미처럼 단순한 친목과 사람과사람의 만남의 자리만이 아닌 만남의 공간은 물론 의회의 회의와 토론장소로도 활용이 되었던곳으로 보아 대한제국의 비밀공간으로 불리기도 한다.

개항기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친목을 돕는 사교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1901년 우크라이나인 사바찐이 지금의 자유공원 기슭에 지상 2층의 벽돌조 건물을 지었다.
1914년 이후 일본재향군인회가 사용하면서 정방각으로 불렸으며, 미군의 장교클럽, 시립박물관, 문화원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2007년부터 제물포구락부의 옛 모습을 재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의 사교공간이라는 의미처럼 단순한 친목과 사람과사람의 만남의 자리만이 아닌 만남의 공간은 물론 의회의 회의와 토론장소로도 활용이 되었던곳으로 보아 대한제국의 비밀공간으로 불리기도 한다.